-편집자주-
코아스포츠는 [MLB 추억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거나 또는 은퇴한 선수들과 진행했던 과거의 인터뷰를 통해 시대의 흐름과 옛 추억 등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LA 다저스 시절의 다윈 바니 | 사진=다저스 홍보팀 제공
[피닉스 미국 애리조나주 = 이상희 기자]
“류현진(27·LA 다저스)과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했는데 무척 어려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를 통해 한국어를 배워둘 걸 그랬다. 하하.”
지난 7월 시카고 컵스에서 방출된 뒤 LA 다저스로 이적한 내야수 다윈 바니(29)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한국계인 바니는 또 “다저스처럼 성적이 좋은 팀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돼 기쁘다”며 “출전 기회는 많지 않지만 팀 승리를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미국 오리건주 출신인 바니는 고교시절부터 내야 전 포지션을 아우를 만큼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시절 소속팀을 오리건주 챔피언으로 이끈 바니는 오리건 주립대에 진학한 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오리건 주립대는 이런 바니의 활약에 힘입어 2006년과 2007년 2년 연속 전미대학야구 챔피언십에 진출해 우승했다. 바니는 또 2006년 미국대학야구 대표팀에 선발돼 그 해 열린 세계대학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바니는 2007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전체 127번)에서 컵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고, 이후 단 3년 만인 2010년 8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뛰어난 수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빅리그에 데뷔한 바니는 이듬해인 2011년부터 컵스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타율은 2할대 중반이었지만 수비력 만큼은 리그 최정상급이었다. 바니는 2012년 골드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물론 그 해 메이저리그 최고 2루수에게 주는 필딩 바이블(Fielding Bible)상도 함께 받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빅리그 데뷔 후 승승장구하던 바니의 봄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타율 0.208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바니는 올해도 타격 부진을 면치 못해 지난 7월 22일 컵스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1주일 뒤 다저스의 부름을 받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다저스에서는 22일(한국시간) 현재 16경기에 나와 타율 0.273(22타수6안타) 1홈런 5타점을 기록 중이다.
바니는 평소 온화한 성품과 준수한 외모 덕에 미국 내에서 인기가 높다. 바니는 또 할머니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팬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비록 “한국어는 못하지만 한국계인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바니를 최근 미국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윈 바니(가운데)와 그의 다저스 동료들 | 사진=다저스 홍보팀 제공
-컵스에서 다저스로 이적한 소감을 듣고 싶다.
“정말 좋은 팀, 특히 승리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게 돼 기쁘다. 내게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골드글러브 수상자가 ‘방출’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년 반 동안 타격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수비력만큼은 빅리그 데뷔 후 항상 꾸준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 욕심내지 않고 내가 가진 역량과 실력 안에서 팀 승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잘 알겠지만 야구는 쉬운 경기가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야구는 꾸준한 실력을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야구는 또 우리네 인생과 유사해서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부정적인 생각은 지워버리고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출전기회를 위해 날마다 열심히 준비해 팀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타격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나도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빅리그 선수라면 타격 외에 다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다저스로 이적한 후 내야의 다양한 포지션에 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내 역할에 익숙해지고 팀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가운데 타격연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과거의 좋았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다저스로 이적한지 한 달이 넘었다. 직접 겪어본 다저스는 어떤 팀인가?
“전체적으로 매우 마음에 드는 팀이다. 선수나 코칭스태프 구성원도 다양하고 그들의 성격도 유쾌해서 좋다. 특히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공통목표가 있기 때문인지 구성원들 대다수가 개인기록보다는 팀 승리를 우선시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 또한 개인기록보다 팀 승리를 우선시하는 분위기에 젖어 드는 것 같다.”
-야구를 시작한 뒤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자면?
“대학시절 2년 연속 전미대학야구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했을 때 매우 기뻤다. 특히 2006년 처음 우승했을 때는 진짜 행복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프로에서는 2012년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골드글러브는 개인적으로 평생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만큼 매우 뜻 깊은 상이자 원한다고 누가 내게서 뺏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할머니가 한국사람이고 할아버지는 일본인이다.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특히 두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분에게 늘 감사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집안에서 내 키가 제일 큰 것을 보면 나는 조금 더 한국적인 사람인 것 같다. 만약 내 키가 더 작았다면 빅리그 선수가 되는 게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을 것 같다.
“할머니는 매우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분이시다. 젊었을 때는 라스베가스에서 가수로 활동하시며 음반도 발매했다. 지금은 라스베가스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계신데 그런 할머니의 손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녀의 삶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
-할머니가 지금도 노래를 부르시나.
“그렇다. 특히 내 아이들을 위해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하신다. 아내가 아플 때도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신다. 오늘 아침에도 할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나를 보기 위해 라스베가스에서 직접 운전을 하고 이곳 애리조나로 오실 생각이라고 한다.”
-할머니 때문에 한국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동료인 류현진과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했는데 무척 어려웠다. 예전에 스페인어를 배울 때도 힘들었는데 한국어도 정말 어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를 통해 한국어를 배워둘 걸 그랬다. 하하.”
시카고 컵스 시절의 바니 | 사진=코아스포츠 DB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빅리그 투수 중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이는?
“너무 많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단순하게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다수의 타자들은 ‘투수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면 구속이 100마일이 넘어도 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지금은 투심 패스트볼을 비롯해 싱커와 커터 등 움직임이 심한 공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가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뛰어난 마무리 투수들도 너무 많다. 특히 다저스의 마무리 켄리 젠슨(27)의 공은 오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이 들 만큼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한 팀이 되어 더 이상 젠슨을 상대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하하.”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알다시피 야구 시즌은 무척 길다. 그래서 휴식일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무조건 쉬는 편이다. 물론 체력적으로 이상이 없을지라도 정신적인 안정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서를 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휴식일만큼은 가급적 야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야구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가?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습관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양말과 신발을 신을 때 항상 왼쪽부터 신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지금도 실수로 오른쪽부터 양말을 신으면 벗어서 다시 왼쪽부터 신는다.”
-바니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내게 야구는… (잠시 생각한 뒤) 내가 사랑하는 일이자 직업이고 아울러 (웃으며) 주수입원이기도 하다. 빅리그 선수가 되려면 많은 시간은 물론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든지 유니폼을 벗고 은퇴를 해야 하는 시간을 피할 수 없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오겠지만 빅리그 선수 바니보다는 인성이 뛰어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현역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즐겁게 그리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 팬들을 위해 한 마디 한다면.
“인터뷰 초반에 언급했듯 나는 내 자신이 한국계인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나와 다저스를 응원해주는 한국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니 더 많은 성원을 부탁한다. 성원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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