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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 출신 외야수 헌터, "야구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MLB 추억의 인터뷰

by Koa Sports 2023. 11. 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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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메이저리그 외야수 토리 헌터 | 사진=동아닷컴DB

 

지난 5월 말, 디트로이트는 볼티모어를 상대로 원정경기를 치렀다. 이날 디트로이트 외야수 토리 헌터(39)는 팀이 4대1로 앞선 8회초 타석에서 상대팀 투수 버드 노리스(29)가 던진 공에 옆구리를 강타당했다. 보복성 빈볼이었다.

고통을 참고 1루로 향하던 헌터는 잠시 후 상대팀 투수 노리스와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자 이날 경기를 중계하던 미국 현지해설가는 “토리 헌터(39)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인성이 좋은 선수이다. 그런 헌터가 화를 내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 해로 메이저리그 경력 18년째인 헌터는 두 번이나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올스타에 5번이나 선정됐고 골드글러브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9년 연속 수상했을 만큼 빅리그에 큰 발자취를 남긴 베테랑이다. 헌터는 또 경기장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팬들의 사인공세에 일일이 다 응해줄 만큼 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따듯한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미국 아칸소 주(州) 출신인 헌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93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20번)에서 미네소타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다. 그리고 4년 뒤인 1997년 8월 대주자로 빅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헌터가 주전으로 자리잡은 건 1999년부터이다.

특히 헌터는 자신의 전성기였던 2001년부터 올 해까지 매년 3할 언저리의 타율과 두 자릿수 이상의 홈런을 기록 중이다.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외야수비 또한 일품이다. 헌터가 외야부문 골드글러브를 9년 연속으로 수상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원 소속팀인 미네소타와 이별한 헌터는 LA 에인절스로 이적해 그곳에서 5년을 뛴 뒤 지난해 디트로이트로 이적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또 다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헌터는 빅리그 18년 통산 타율 0.279 331홈런 2327안타 1310타점을 기록 중이다.

헌터는 빼어난 야구실력만큼이나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해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소외된 지역에 유소년 야구장을 짓거나 이를 관리하는 일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동아닷컴은 국내 언론 최초로 빼어난 야구실력과 훌륭한 인성을 지닌 메이저리그 베테랑 헌터를 올 정규시즌 중 미국 현지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다음은 토리 헌터와의 일문일답.

-메이저리그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성공비결을 꼽자면?

“빅리그 신인이었을 때 선배들이 내게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점을 찾아서 그것을 보완하는데 노력하라”는 말을 해줬다. 그들은 또 “네가 노력하지 않으면 분명 힘든 시기를 겪을 것”이란 말도 해줬다. 신인이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빅리그 경험이 쌓일수록 선배들의 조언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껏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디트로이트로 이적한 후에도 나보다 잘하는 동료나 후배들이 있으면 그들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토리 헌터. 동아닷컴DB

 

-빅리그 경력 18년째인 베테랑이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구한다니 놀랍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빅리그 경험이 많을지라도 항상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필드에서 배우는 게 싫다면 집에 가야 된다. (웃으며) 그런데 재미난 것은 집에 가더라도 TV 중계 등을 통해서도 배울 게 또 있다는 것이다. 하하. 배움에는 정말이지 끝이 없는 것 같다. 빅리그 선수가 됐다고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그것은 추락으로 이어진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빅리그에서 한 두 해 반짝하고 사라진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그들이 배우고 수정하는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한 두 해 잘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부족한 걸 찾아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 야구나 인생이나 끝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롱런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롤모델은 누구였나?

“지금은 작고한 미네소타의 프랜차이즈 스타 커비 퍼켓이 나의 롤모델이었다. 퍼켓은 월드시리즈 우승은 물론 10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됐을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또 내가 신인이었을 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후배들에게도 매우 따듯한 사람이었다. 나 또한 빅리그 베테랑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퍼켓 같은 롤모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퍼켓이 빅리그에 남긴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퍼켓뿐만 아니라 게리 셰필드(46)같은 훌륭한 선배들의 영향도 컸다.”

-야구를 시작한 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잠시 생각하더니)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야구를 시작한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그러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미네소타에서 뛰었던 2002년 시즌이었다. 당시 시즌 초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우리팀을 가리켜 ‘가장 뛰어난 트리플 A 팀’이라고 조롱하며 ‘메이저리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미네소타를 빅리그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해 정규시즌에서 97승을 거두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에서 오클랜드를 누르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에도 진출했다. 당시 사람들의 조롱을 이겨내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했기에 그때가 야구를 시작한 뒤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빅리그 경력 18년 째인 당신의 시즌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타율이나 홈런 등 개인기록은 목표로 세우지 않는다. 수비나 공격 등 어떤 식으로든 팀 승리를 위해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한다면 빅리그 경험 등을 통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이나 노하우 등을 전수해 그들이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선수가 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물론 나 또한 젊었을 때는 개인기록에 연연했다. 하지만 베테랑이 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팀이 우선이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빅리그 투수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를 꼽는다면?

“현존하는 투수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투수를 꼽자면 (잠시 생각하더니)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좌완투수 크리스 세일(25)이다. 세일은 실력도 좋지만 마운드 위에서 뜸들이는 시간도 길고 게다가 투구폼도 특이해서 (웃으며) 때론 짜증이 날만큼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이다. 하하.”

토리 헌터. 동아닷컴DB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잘 알겠지만 메이저리그는 시즌도 길고 이동거리도 엄청나다. 게다가 주로 야간경기로 진행되다 보니 밤 11시 정도에 경기가 끝나면 보통 새벽 2~3시까지 잠을 못 잔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10시 정도에 일어나면 곧장 야구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등 일정이 빡빡하다. 그래서 쉬는 날은 평소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는 등 주로 휴식을 취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평소 보지 못했던 최신 영화를 보거나 골프를 치는 등 여가생활도 즐긴다.”

-야구 외에 잘하는 운동이 있다면?

“슬하에 아들 3형제가 있는데 셋 다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뛰고 있다. 나도 야구선수가 되기 전에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미식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다.”

-당신도 별명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마이너리그 시절에 타석에서 상대투수의 공에 맞으면 투수와 자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그러면 동료들이 내 이름 토리의 첫 글자인 티(T)를 부르고 “너 지금 제 정신이니? (Are you nuts?)”라고 해서 그 때부터 ‘티넛츠(T-Nuts)’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하하.”

-야구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가?

“나는 징크스가 없다. 징크스는 일종의 미신인데 징크스를 만들고 그것을 믿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심지어는 여성의 속옷도 입게 된다. 하하. 내가 믿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신(神)뿐이다.”

-헌터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을 빈민가에서 보냈다. 그곳은 늘 사고가 많았던 위험한 곳이었다. 내가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런 사고에 휘말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야구를 통해 지금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됐고, 야구를 통해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는 내 생명의 은인이자 형제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안 그래도 오늘 이와 관련된 내용을 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올렸는데,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절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야구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며 설령 실패했다 해도 그 과정을 통해 부족한 것을 채우고 배워나가다 보면 종국에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팬들에게는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팀을 옮겨도 늘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나도 머지 않아 은퇴를 고려할 때가 있겠지만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은퇴하는 그날까지 매 경기마다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팬들의 격려와 성원이 있었기에 지난 18년 동안 빅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팬들에게 깊이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한다.”

-‘은퇴’를 논하기엔 성적이 너무 좋다. 앞으로 한 십 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

“(웃으며) 십 년은 말도 안 된다. 한 십 일이라면 모를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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